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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나는 잘 있다 I am fine

참여작가최석운 전시기간2010.04.15 ~ 2010.05.21

욕실 문화/정보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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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최석운이다  - 회화의 인간학

최석운을 만난 것이 언제쯤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일반적으로 만나는 경로를 따르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고향 친구도 아니고(그는 경북 성주가 고향이고 나는 경북 상주가 고향이다) 중고등학교 동창도 아니며 대학도 전공도 다르고 학번도 다르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해서 단 한 번에 벌거벗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게 해주는 대한민국 군대 동기도 아니고 회사 입사동기도 아니다. 내게는 인생의 여러 탈피단계에서 함께 한 친구들이 대체로 다 있는데 그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와 나는 생년월일이 같다. 시간만 조금 달라서 내가 몇 시간 일찍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나 아니면 그의 기억이 부정확할 수 있으므로 몇 시간 차이는 중요한 것도 아니다. 어떻든 사주팔자(四柱八字) 가운데 삼주(三柱), 여섯 글자가 같으니 그저 먹기로 친구가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상주의 ‘아’와 성주의 ‘어’가 다르듯 두 사람의 운명은 물론 성격도 생김새도 닮은 데가 전혀 없다. 화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인간적으로 다른 게 너무 많다.


그는 목소리가 크고 곱슬머리이고 자신이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내가 패션에 무감하다고 여긴다. 나는 목소리보다는 웃음소리가 크고 뻣뻣한 직모이며 ‘동네 아저씨’들처럼 등산복을 즐겨 입다가 개과천선하여 청바지도 입지만 최석운이 “거 옷 살 때나 머리 깎을 때는 먼저 나한테 물어보고 하라”는 말을 따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럴 생각도 전혀 없다. 이렇게 다른 점이 많으니 어느 때는 정반대되는 것을 각자 갖추어 입고 마주 서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런 점이 그를 대할 때 한편으로 일정한 거리를 가지게 하고 하늘이 우연하게 시간적, 지리적으로 친구하라고 점지해준 동창들처럼 허물없이 너나들이를 하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점이 있고 그 때문에 각자의 분야에서 서로의 작업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우리 두 사람에게는 공통적인 데가 분명히 있다. 그 공통점이 함께 힘을 합쳐 한 권의 책을 출간하게 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인간적이다>이다. 내용은 주로 내가 쓴 소설이며 책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표지 그림을 그린 사람이 최석운이다.


최석운은 그림을 그려와서는 그림 속의 인물이 나를 닮았다고 주장했다. 나는 화가 본인을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주장을 강하게 하면 서로 목소리를 높이게 마련이고 목청이 작은 내가 밀릴 것이니 오래도록 우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평소 최석운이 그린 아저씨나 백수 총각은 물론 아줌마, 심지어 개나 돼지조차 최석운을 빼닮았다는 게 내 생각이고 내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할 것으로 확고히 믿고 있다. 어쩌면 화가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석운이 <인간적이다>라는 책의 표지 그림을 맡아서 그릴 정도로 대단히 인간적인 작가이기는 하지만 그는 인간 그 자체를 그리지는 않는다. 인간 그 자체를 존재 그대로 그리는 것은 신의 영역이며 우리 인간, 예술가들은 ‘인간적인 것’을 그릴 뿐이다. 인간 그 자체를 그리거나 소설로 쓴다면 세속에서의 삶을 영위해야 하는 화가나 소설가는 일단 굶어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릴 것이 많지 않은 건 당연하고 쓸 것도 한두 줄이면 끝이다. 그림값, 원고료 수입에 중대한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혹은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극한의 단계까지 밀어붙여서 인간이 창작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성취하도록 해야 한다. 수천 년의 인류 역사상 몇 안 되는 성자들이 그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절대미, 완벽의 세계다.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비인간적이다.

 

 

         

 

평범한 ‘아줌마’들이 그지없이 화사한 색감의 옷을 입고 외출을 나선다.(<외출 1><외출 3>), 하지만 아줌마는 아줌마일 뿐이고, 그들의 눈은 최석운의 그림 속 인물 대부분이 그렇듯 무슨 일에 놀란 듯, 무슨 일을 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듯 어느 한쪽을 보고 있다. 오랜만에 성장을 하고 인생의 봄을 맞으러 가는 길인지도 모르는데 이 얼마나 인간적인 풍경인지.


<해변의 여인>, <해변의 피카소>, <해변의 모나리자> 등 이른바 ‘해변 시리즈’의 인물들은 해변에서의 관음증적 시선이나 노출증적인 현시욕에서 해방된 존재들인 동시에 피카소와 모나리자는 절대성의 주술에서 풀려나와 인간성을 회복했다. 담벼락 아래에서 입을 맞추는 남녀(<어떤 풍경>), 무슨 엄청난 사안이 걸린 비밀통화라도 하는 듯이 바빠 보이는 사람들(<나는 잘 있다>), 누가 누구를 따라가는지, 애인 관계인지, 부부관계인지, 아무 관계도 아닌 건지 모를 수상한 동네 아저씨․아줌마의 조우(<조깅>)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끝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그림들은 언제나, 지극히, 너무나 인간적이다. 세상에 존재한 이후 단 한 번도 조명을 받아본 적이 없는 어둡고 평범하고 진부한 것들조차 그의 세상을 지탱하는 굳건한 요소로 살아난다. 일상에서의 작은 평화, 손에 닿을 듯 가까운 이웃이 주는 친밀성(<죽 파는 여자>)을 전면으로 부각시킨 것이 바로 작가의 특유한 시선이다. 그게 평범한 우리가 평범함의 연대로 ‘다 잘 있다’는 전언이라도 되는 양 공감하게 하고 그 작품들 앞에 한참을 머물게 만든다.


항아리에 올라가 있는 돼지들은(<오래된 항아리 1, 2>), 사랑스러움으로 충분히 존재증명을 하고 있다. 돼지가 사람을 ‘당신 그러는 거 아냐’라는 식으로 바라본다든지(<돼지가 나를 본다>), 개가 ‘그대들 인간이여, 생각은 좀 하고 사시오?’ 하는 식으로 바라본다(<개가 나를 본다>). 한 마디로 웃기는 것들이다. 한 마디 더 하자면 그런 시선을 받고 있는 우리도 웃기는 존재들이다. 그런가하면 바위에 기대어 골똘한 상념에 빠져 있는 개(<견월도>)에게서는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세상에, 골똘히 생각하는 개가 다 있다! 그러고 보면 개가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알 수 없다. 입체 <돼지가 나를 본다>의 돼지는 또 어떤가. 전시회에 온 사람들은 저금통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 돼지는 코 묻은 동전 따위에는 전혀 연연하지 않는, 인간을 관찰하는 ‘인간적인, 인간화된’ 돼지이다.

 

 

<지하철>의 남녀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발견하는 모습이다. 같은 남자가 지하철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는 사이(<오줌 누는 남자>) 빨간 입술과 빨간 매니큐어를 한 여자는 여자 화장실에서 입술에 립스틱을 더 바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못 들어가서 그렇지 들어갔으면 그 또한 최석운의 앵글에 잡혔을 것이다. 제목은 내가 정해줄 수도 있다. <입술 칠하는 여자>라고. 숙박업소에서 바깥을 향해 서서 담배 연기를 뿜고 있는 남녀 역시 실감나게 통속적이다. 시원하게 옷을 벗고 자는 남자(<호텔>) 역시 통속적이고 실감이 난다. 그래서 자연스럽다. <죽 파는 여자>는 자연스러움을 넘어 천연스럽다. 꾸밈없는 자연처럼 진실하다.

 

 

최석운 특유의 일상 - 유머 - 통속 - 자연스러움 - 천연스러움 - 진실 - 낙천성 - 인생 긍정의 연쇄는 어디로 이어질까. 그 무엇을 중간에 더 끼워 넣게 될지 모르지만 궁극에는 성스러움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성스러움 역시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희유원소, 황금이 아닌 세슘이나 토륨처럼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이 눈 밝은 화가는 인류사에 수천억 분의 일의 비율로 발현되는 인간의 성스러움 또한 반드시 ‘인간적인 것’으로 포착해 내고야 말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최석운의 달걀’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변화하고 있다. 그는 예술적 모험 앞에서는 망설이는 법이 거의 없다.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변화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진통을 기꺼이 인생의 자양분으로 만든다. 그는 끊임없이 공감, 공명을 생산하면서 장거리 종목의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처럼 쭉쭉 나아가고 있다. 올림픽 경기장은 원점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게 생겼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멈춘다. 하지만 그림은 올림픽 종목이 아니고 그는 최석운이라는 작가, 회화의 인간학자이다.


그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역시 그림 속의 남녀노소, 우수마발과 같은 삶을 살고 살아왔고 화사하고 진진한 한 순간을 누릴 것이기에.

그의 그림을 만나면서 나는 인간의 진실과 인간다움의 세목을 훨씬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필시 내 사주팔자에 들어 있을 축복이며 그의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복이리라. /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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