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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DRAW 엿들은 대화

참여작가문성식, 배윤환, 송진수, 이영빈, 임자혁 전시기간2012.06.05 ~ 2012.07.07

욕실 문화/정보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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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회화가 완벽한 아트웍으로서의 감흥을 준다면, 반면에 드로잉은 그 완벽함의 한계를  내던지고 작가 본연의 감수성을 드러낼 수 있는 매체로 인식되고 있다. 드로잉은 ‘생각의 과정을 구현해내는 기록’이라는 특수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드로잉 안에서 개념은 모든 방향으로 활짝 열려있으며,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날 것 그대로 작가의 복잡 미묘한 내면을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미술이라는 뻣뻣하기 그지없는 제약과 구속을 털어버리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던 작가들의 정신을 드로잉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어쩌면 난해한 현대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직접적인 감상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드로잉이 가진 근원적 성격과 내면적 속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번 전시는, 줄긋기 하나로도 단순하면서 강한 역동성을 보여 줄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작품을 실제화 시키는 과정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흔적이면서 또한 독립된 창조적 행위의 지표로서 기여한다. 현재 드로잉이 가지는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5명의 작가들이 보이는 다양한 매체의 사용과 새로운 접근방식은 드로잉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넘어 매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관념적 재 정의의 시도로서 보여 지게 될 것이다. /갤러리로얄

 

 

 

 

 

문성식/  문성식은 숲의 드라마에서 배경이 배경에 머물지 않도록 화면 전체를 집요하게 묘사한다. 그러면서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어디에서 무슨 일이든 곁에서 끝으로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문성식의 그림 안에서 동양화의 다원적 시점, 즉 매 순간 움직이는 시점을 통해 깨어난다. 이것은 작가의 풍경화가 눈으로 본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실제 숲과 조우했던 몸의 감각 체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긴 화폭 위에서 땅이 깎여져 나가고 황폐한 땅과 멀지 않은 곳에서 꽃과 풀이 자라는 것이 보이지만 내부의 내러티브는 풍경 뒤로 숨어 알 수 없다. 이 파노라마 안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교차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주체들이 겪은 사건들의 '겹침'이다. 문성식의 드로잉에는 하나의 사건이 아닌 여러 개의 시선이 겹쳐진다. 그림 안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도 매 순간이 클라이맥스인 채로 시간이 흐른다.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풍경과 초상을 교차시키는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라 세상을 저장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실험이다. 서로 다른 두 현실의 교차는 과연 무심할 수 있을까.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깃든 '살아남음'에 대한 작가의 질문은 집요하다. /현시원(미술이론)

 

 

 

배윤환/  배윤환이 사용하는 다양한 재료처럼 '억양이 바뀔 뿐, 말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했을 때의 맛', 그 탐식가적인 본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작가의 표현 욕구는 글이나 말처럼 단선적인 질서를 통해서 일관되게 펼쳐야 하는 주장 대신에 다성성(polyphony)으로 귀결된다. 다성성을 시각화하면 괴물이 된다. 그의 작품에서 이국적 동물 또한 낯설고 이질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괴물에 포함된다. 또 광기의 진실은 논리적 연관성이 없는 무의식적 자동성에 있다. 섬광처럼 명멸, 또는 폭발하는 색채의 다발과 이러한 현실적 힘을 잠재적으로 포괄하는 블랙은 침묵을 넘어서는 광기의 언어이다. 배윤환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심연으로 푹 꺼져 들어가는 듯한, 또는 그 반대인 도약이 내포된 블랙의 무한한 스펙트럼과 관련된다. 스펙트럼이 접혀지면 블랙, 그것이 펼쳐지면 이세상의 다양한 색이 된다. 그것은 삶과 죽음만큼이나 간격이 있고, 또 그 긴밀한 순환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광기의 작품들에 의해 때로 이 세계가 정화된다는 점은 근대 이후의 시대에도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배윤환 은 편집과 분열을 넘나드는 근대와 근대 이후의 예술 언어에 널리 걸쳐 있는 알레고리로 다가온다. /이선영

 

 


송진수/  "인체를 드로잉하다." 이 말은 별반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대상이 회화가 아닌 조각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평면이 아닌 공간에 어떤 대상을 그린다는 것부터 송진수의 작업은 시작된다. 송진수의 작업은 차원을 넘나드는 시각의 환영을 일으킨다. 일상의 익숙한 풍경사진 위 슥슥 그려낸 드로잉을 보고 있는 것인지, 3차원의 공간 속 평면화 된  드로잉을 보고 있는 것인지, 집중하면 할수록 우리의 눈은 미궁에 빠져든다. 굵은 철사를 자유롭게 구부리고 이어 붙여 사방에서 선의 교차를 이용한 감상이 가능하다. 그의 작품은 때로는 동양화 전통의 일필휘지(一筆揮之) 의 속도감을 표현기법으로 사용하고, 때로는 짧게 반복되는 직선과 곡선을 이용하여 선의 밀도를 높인 기법을 택하기도 한다. 일종의 드로잉조각으로 정의할 만한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조각의 경계를 넘어 그 범주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된다. /갤러리로얄

 


이영빈/ 이영빈은 전통기법으로부터 스스로 발전시킨 고유한 표현법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일상을 담아내는 작가로 '수묵'보다는 '일상'에 무게가 실린다. 대중목욕탕, 여인숙, 자신의 방 등 평범하지만 은밀한 영역으로서 쉽게 공개되지 않는 공간을 조감도를 그리듯 활짝 펼쳐놓는다. 언뜻 낙서나 자동기술에 의한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그림은 연필선이 강조된 드로잉의 성격이 강하지만 동시에 닥지나 장지 위에 분채나 담채로 은은하게 채색한 고유한 회화적 특징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삶의 단상을 동양화의 전통적인 일획의 필선 대신 가늘게 흔들리는 섬세한 선으로 그려낸 그녀의 그림은 기법과 소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균형과 긴장을 동시에 발산한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나 자신을 씻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단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싶다"는 고백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가는 그녀의 작업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과정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신혜영

 

 


임자혁/ 임자혁은 '드로잉 작가'로 불린다. 사실 드로잉은 어떤 작업을 위한 '준비 단계'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어느덧 현대미술의 독자적인 하나의 형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명칭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임자혁 작업의 핵심은 특유의 '간결한' 그리기의 방식에 있다. 이것은 다른 매체로는 대체할 수 없는, 사적이면서도 빠르고 경쾌한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작가만의 방식인 것이다. 즉 하나의 이미지를 캐치하여 그려내는 순간, 작가는 반대로 그의 내면의 어떤 읊조림을 내뱉듯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을 발산하는 것과 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또 임자혁의 작업은 언어적인 특성을 긴밀히 담고 있다. 즉 그의 작업은 압축된 이미지로 표현된 한 편의 시와 닮아 있다. 한 편의 시는 극도로 절제된 몇 개의 단어들만이 나열되어 완성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상징과 정서가 배어 있다. 임자혁의 이미지들 역시 마찬가지다. 때론 거대한 벽에 덩그러니 놓인 것 같은 이미지들이 어떤 모호한 단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 단어가 무엇인지 논리적인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답이 없기에 반대로, 그의 이미지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각기 자유롭게 어떠한 개인적인 생각을 유추하고 펼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임자혁의 이미지들이 지니는 힘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즐기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말이다. /장승연(아트인컬쳐 기자), 네이버캐스트<오늘의 미술>,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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